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잔피에로 콤비 (문단 편집) ====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|1934년 월드컵]] ==== 콤비는 [[토리노]]에서 있었던 [[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오스트리아]] 전의 실망스러움을 뒤로 한 채 선수 은퇴 선언을 하였다. 그렇게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|월드컵]]에 나갈 계획이 없었던 콤비. [[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|그리스]]와의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/지역예선#s-2.3|지역 예선전]]에서도 콤비, 로세타, 칼리가리스가 모두 빠진 자리는 [[루이지 알레만디|알레만디]], [[카를로 체레졸리|체레졸리]] 등의 신진 선수들로 대체되었고 이탈리아는 4대0의 낙승을 거두었다. 하지만 콤비의 자리를 물려받을 젊은 골키퍼 카를로 체레졸리가 훈련 중에 슈팅을 막다가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콤비가 급하게 수혈되었다. 원래 콤비는 [[비토리오 포초|포초]]의 요청을 고사했지만 마음을 바꾸었고, 결국 월드컵이 콤비의 은퇴무대가 되었다.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/1라운드#s-1.1|첫 경기]]인 [[미국 축구 국가대표팀|미국]]전에서 이탈리아는 7:1로 미국을 대파했다. 하지만 주장이었던 [[비르지니오 로세타]]가 출전하지 못하자 콤비가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었다.[* 1934년 월드컵이 개막할 무렵의 이탈리아의 공식 주장은 [[움베르토 칼리가리스]]였고, [[비르지니오 로세타]]가 부주장. 콤비는 다음 순위였다. 하지만 토리노에서 오스트리아에 패배한 이후 칼리가리스는 대표팀에는 뽑혔지만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고, 로세타는 미국전이 마지막 A매치 출전이 되었다.] 그는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/8강 이후#s-1.1|8강]]에서 만난 [[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|스페인]]의 [[리카르도 사모라]]와 함께 대단한 선방대결을 펼쳤고,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.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/8강 이후#s-2.1|4강]]에서는 토리노에서 망신을 주었던 [[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|오스트리아]]를 상대로 결정적인 선방을 2개 기록하며 팀을 [[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/8강 이후#s-4.1|결승]]으로 이끌었고, 마침내 [[체코 축구 국가대표팀|체코슬로바키아]]까지 꺾고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. 이렇게 콤비는 최초로 주장으로 [[FIFA 월드컵|월드컵]] 우승을 차지한 골키퍼가 되었다.[* 이 기록은 이후 [[디노 조프]], [[이케르 카시야스]], [[위고 요리스]]가 재현해낸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